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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직장인독서회
문화행사

9월 정기모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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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홍진 작성일07-08-13 00:00 조회3,116회 댓글0건

본문

≪ 9월 화수분독서회 모임안내 ≫


 1. 일 시 : 2007. 9. 9(일) 오후2시

 2. 장 소 : 시립도서관 4층 다목적홀

 3. 토론도서 : '남한산성'/김훈 著 /학고재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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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정기도서로 역사물 중 한권을 선택하여 하였습니다.
고민이 된 것이 있다면 쉽게 구입을 할수 있는 책이고 공감을 할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해서 정해졌습니다.
우리 역사를 뒤돌아 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래요.

줄거리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1636년 12월 13일 조정은 청의 대군이 청천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장계를 받고 술렁인다. 9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들어가야 하는가. 분분한 논란이 이어지고 인조의 어가행렬은 황망 중에 강화행궁을 향한다. 그러나 이미 청군은 가는 길을 차단했다. 인조는 얼어붙은 송파나루에서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양주 석실에서 형 김상용이 보낸 급보를 받고 남한산성으로 출발한다. 송파나루에 닿은 그는 뱃사공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강을 건너는데, 얼음길을 잘 아는 뱃사공에게 함께 남한산성에 들기를 청하나 뱃사공이 거절하고, 김상헌은 뱃사공을 죽인다. 한편 산성 안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대장간을 지킨다.

성 안은 춥고 식량은 모자라며, 말들은 먹을 풀이 없었다. 비와 눈이 모질게 내려 얼어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말들은 굶주려 죽는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는 삼전도에 진을 치고 성 밖을 둘러싼 채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면전은 엄두를 낼 수 없고 몇 명씩 유군을 편성, 암문을 통해 나가 소규모 국지전만 몇 차례 치르는 상황인데, 묘당에서는 항쟁을 주장하는 김상헌과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의 논쟁이 포화보다 뜨겁다.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던 임금은 최명길을 조용히 불러 화친의 길을 열어보도록 명한다. 최명길은 청군 진영에 가서 청의 조칙을 따를 것과 세자와 척화파 대신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고 온다. 마침내 칸이 당도했다는 소문이 성 안에 돌고, 묘당에서는 최명길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조정은 산성의 힘을 과장하는 격서를 만들어 성 밖의 군사들에게 돌리려 한다. 그들의 힘을 북돋우고 원군을 불러들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첩첩 적진을 돌파해 격서를 전달할 사람은 없었다. 김상헌은 서날쇠를 찾아가 그 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서날쇠는 격서를 돌리기 위해 성을 나간다.

새해를 맞아 인조는 세찬을 용골대에게 보낸다. 적들은 거절한다. 모욕을 당한 조정은 북문을 나가 청병을 공격한다. 무모한 도발로 오히려 조선 군사는 자멸하고 만다. 설날 아침 인조는 행궁 안에서 명나라를 향해 망궐례를 행하고, 칸은 망월봉 위에서 그 광경을 심상하게 지켜본다.

서서히 날이 풀리고 인조는 성을 나와 항복하라는 칸의 문서를 받는다. 그러나 신하 중 아무도 칸에게 보낼 답서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인조는 정오품 교리, 정오품 정랑, 정육품 수찬, 최명길을 불러 각자 글을 쓰도록 명한다. 어명을 받은 정육품 수찬은 못 쓰겠다는 글을 써 곤장을 맞고, 정오품 교리는 심장이 터져 죽고, 정오품 정랑은 선택되지 않을 글을 써낸다. 결국 최명길이 쓴 글이 적진으로 간다. 답서에 불만을 품은 청군은 남한산성 안으로 홍이포를 쏘며 겁준다.

이때 원손과 빈궁이 있던 강화도도 청군에게 함락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인조는 성을 나서서 칸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로 결심한다. 끝까지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은 사직 상소를 올린 뒤 목을 매고, 인조는 1월 30일 새벽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칸에게 항복하는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