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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분직장인독서회
문화행사

12월 정기모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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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홍진 작성일12-11-19 20:52 조회2,9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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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2월 화수분독서회 모임안내 ≫  1. 일 시 : 2012. 12. 9 (일) 오후2시  2. 장 소 : 시립도서관 3층 왼쪽 끝(디지털방 옆) 독서회방  3. 토론도서 :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저 / 최현 옮김/ 집문당 출판 ========================================================== 책소개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인 플라톤이 남긴 25편의 대화편 중에서 흔히 플라톤의 4대 복음서라고 전해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크리톤 및 향연의 네 편과 덕의 문제를 논하는 프로타고라스 한 편을 실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불경과 선동죄로 사직에 고발을 당해, 법정에서 그 경위와 자신의 심경을 말하고 있다. 파이돈에서는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의 늠름한 최후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크리톤에서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논리문제를 개체와 국가 또는 법률과 결부시켜 다루고 있다. 향연은 오늘의 연회와 비슷한 것으로 여기서의 주제는 사랑이며, 문학 작품으로 가장 완벽하다는 정평이 있다. 마지막으로 프로타고라스에서는 대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가 덕에 대한 문제를 논하는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이른바 문답식 산파술이 돋보이며, 구성이나 표현에 있어서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도 훌륭한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플라톤(Platon) [저]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정계의 유망주로 기대를 받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다. 플라톤은 유명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에 태어났으며, 전쟁은 기원전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 속에서 성장하여 성인이 된다. 그는 맹목적인 삶보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를 통해 배웠다. 플라톤의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또한 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그가 믿고 따르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확인한 후 정치에 회의를 품고 철학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랐으며 교육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아 소크라테스 사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기원전 387년경 아테네 근교에 철학 중심의 종합대학인 아케데미아라는 학원을 창설하였다. 그 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많은 철학자들을 양성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 제자인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 그의 철학적 삶이 알려지게 되었다. 플라톤의 저서 30여편 가운데 한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어 [대화편]이라고 불리는데, [국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파이돈] [크리톤] [프로타고라스] 등에서 주인공으로 모두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고 있다. 이로써 많은 저서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록들로 스승의 영향이 플라톤의 사상적 근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플라톤의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고대의 사상가들이 그러하듯, 플라톤 역시 현대의 분과학문 체계로는 불가능할 법한 종합적 사상을 개진하였다. 그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이데아를 제창함으로써 본질과 현상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를 발전시켰다. [국가]는 플라톤의 정치관을 대변하는 저술로, 이 저서에서 플라톤은 민주적인 정치 체제보다는 지적 소양이 풍부한 귀족들에 의한 통치를 선호했다. 철인군주론은 플라톤의 정치관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다. 그는 종종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다분히 현상 지향적이었다면 플라톤의 사상은 이상적이고 관념 위주였다는 평을 받는다.